기술의 유럽은 옛말...수전해 스택 본진도 이제는 중국
론지, 5MW 알칼라인 전해조 유럽으로 직수출
지멘스, 중국 기술 적용한 ‘독일산’ 제품 사용
스택 제조 기반 확보 위한 로드맵 필요
중국산 전해조의 유럽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론지 하이드로젠(LONGi Hydrogen)은 알칼라인 전해조를 직접 수출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지멘스(Siemens)는 중국의 제조사, 독일 내 합작법인과 손을 잡고 ‘메이드 인 저머니’ 전해조를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도권은 중국 업체들이 쥐고 있다. 독일의 제조사가 중국의 기술을 활용해 현지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이 현실이 된 셈이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전해조 시장에도 수소판 알리·테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발 저가 전해조 공습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의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 전해조 시장 뚫은 ‘론지’
1월 9일경으로 기억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해조 제조사인 론지 하이드로젠(이하 ‘론지’)이 유럽 내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5MW급 전해조 시스템을 최초로 납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론지의 유럽 시장 진출은 비야디의 전기차량이 영국의 택시 시장에 처음 진출한 것과 같다. 이는 앞으로 열릴 수전해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단초라 할 수 있다.
유럽 전해조 업계는 중국산 장비의 가격 경쟁력에 두려움을 느낀다. 과거 태양광 산업과 유사한 공급망 잠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정책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럽수소은행(EHB)의 보조금 입찰 시 중국산 전해조 사용 비중을 25%로 제한하는 등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서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번 수출은 EU의 규제와 표준을 충족한다는 뜻이다. 론지의 제품은 5MW급 가압형 알칼라인 전해조로 유럽의 CE 인증을 받았다. ASME(미국기계학회) 설계 규격을 따르고 있으며, CE PED(압력기기지침) 인증도 통과했다.
이번에 납품 대상 국가나 사업자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을 거쳐 제품이 인도된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다.
론지는 이미 지난해 5월, 노르웨이의 수전해 전문 기업인 하이드로젠프로(HydrogenPro)에 약 7000만 크로네(약 100억 원)를 투자하면서 유럽 내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5MW(1,000Nm³/h)급 알칼라인 Hi1 전해조 세트를 하이드로젠프로에 공급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합성연료(이퓨얼)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론지의 Hi1 전해조는 업계 최고 수준인 4.0~4.3 kWh/Nm³의 전력 소비량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에 로테르담 항을 통해 유럽 국가에 인도된 5MW급 모델도 Hi1 시리즈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기술로 ‘메이드 인 저머니’
2024년 11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PwC(Strategy&)가 ‘과잉 생산과 치열한 경쟁: 글로벌 전해조 시장의 전쟁(Overcapacity and intense competition: Battle on the global electrolyzer market)’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전해조 생산 능력이 수요보다 8배나 높고, 유럽은 4배나 높다고 지적한다. 과잉 생산, 과열 경쟁의 늪에 빠진 셈이다. 또 중국산 알칼라인 전해조(5MW급 표준 모델 기준) 가격은 유럽산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성능 차이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유럽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당장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기 위해 핵심 역량에 집중하면서 외부 파트너(중국 전해조 공급망)와 협력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제안에 화답하듯 지멘스가 행동에 나섰다. 2025년 2월 중국의 궈푸칭넝, RCT GH Hydrogen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RCT GH Hydrogen은 RCT그룹이 지분 51%, 궈푸칭넝이 지분 49%를 투자해 지난 2024년 독일 콘스탄스에 세운 합작법인이다.
지멘스는 전해조 스택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중국의 스택 기술과 독일 합작사의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술에 자사의 디지털 자동화 솔루션을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멘스 에너지가 관여하고 있는 PEM 전해조 시장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시장을 열어주고 실리를 챙긴 셈이다.
알칼라인 전해조 제조공장은 처음 계획한 브란덴부르크가 아닌 튀링겐에 세우기로 확정했다. 중국의 핵심 기술을 들여와 독일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과거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RCT GH Hydrogen은 올해 1분기 연간 250MW 규모의 전해조 스택 생산라인 가동에 들어가 향후 기가와트급으로 생산량을 늘려갈 방침이다. 초기에는 2.5MW급 모델을 주력으로 하며, 이후 5MW급 확장형을 조립해 판매하게 된다.
우선 2.5MW 전해조 2기를 납품해 올해 3분기 시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럽수소은행의 보조금 경매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의 궈푸칭넝도 핵심 부품을 수출해 ‘유럽산’ 지위를 얻으면서 독일 정부의 저리 대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중국의 공세 맞선 ‘로드맵’ 필요
지멘스는 자사의 엑셀러레이터(Xcelerator) 플랫폼을 통해 전해조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제어 기술, 디지털트윈에 집중하게 된다. 중국산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 기술을 입혀 운영 면에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AI 기반 에너지 관리 시장에서 지멘스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겠지만, 유럽 내 알칼라인 스택 제조 기반이 붕괴되면서 중국에 시장을 내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국내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전해조 업계의 산업 표준을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5MW급 알칼라인 스택을 표준으로 삼아 전극, 멤브레인, 바이폴라 플레이트 등 각종 부품을 공유하는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산 전해조 스택의 외형과 구조가 유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외형이 같아도 업체들마다 전문성에는 차이가 있다. 론지는 전력 효율, 궈푸는 시스템 통합이나 글로벌 인증에 앞서 있고, 선그로우(SUNGROW Hydrogen)는 전력 계통 연계에 강점이 있다. 이렇게 전문 영역에서 차별화를 꾀하면서 품질과 성능을 높여가고 있다는 점이 중국의 저력이다.
현대자동차가 대응하고 있는 PEM(고분자전해질) 시장과 달리, 몇몇 중소·중견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알칼라인 전해조 시장은 무주공산에 가깝다. 중국 기업의 파상공세가 시작되면 이를 막아낼 방도가 없다.
이대로 가면 경제성을 이유로 중국산 설비를 채택하게 되고, 국내 제조 기반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지멘스의 방식을 따라할 수 있고, 중국 업체와 손을 잡고 시장의 파이를 나눠 갖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런 작업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엔비전(Envision Energy)만 해도 네이멍구 츠펑 공장에서 생산한 그린암모니아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로 수출하는 전략을 그리고 있다. 기존 암모니아와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국 중심의 실용주의, 에너지 안보 이슈에 밀려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사업에 대한 관심이 한 풀 꺾였다는 점이다. 유럽도 미국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아 속도 조절에 나선 만큼 이 기회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재공고를 앞둔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CHPS)에서 국내 그린수소 생산 확대에 초점을 두고 비가격 지표를 강화해야 한다. 또 스택의 핵심인 전극, 분리막, 기체확산층 등 핵심 소재 분야에 압도적 성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하면서 부품 국산화율을 높여가야 한다.
차세대 AEM(음이온교환막) 수전해 기술, 고온수전해(SOEC)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 정부 주도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밀도 있게 추진해 전문성을 평가하고, 발 빠른 후속 사업으로 대응력을 높여가는 로드맵 전략이 나왔으면 한다.
기술의 유럽은 옛말...수전해 스택 본진도 이제는 중국 < 기술 < NEWS < 기사본문 - 월간수소경제
기술의 유럽은 옛말...수전해 스택 본진도 이제는 중국
중국산 전해조의 유럽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론지 하이드로젠(LONGi Hydrogen)은 알칼라인 전해조를 직접 수출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지멘스(Siemens)는 중국의 제조사, 독일 내 합작법인과 손을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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