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포스코홀딩스 등 국내 기업의 중동 그린수소 시장 진출이 활발해졌다. 지난달 말 윤곽을 드러낸 청정수소 인증제를 등에 업고 중동산 그린수소가 한국에 대거 들어올 전망이다. / 출처=게티이미지
중동산(産) 그린수소가 청정수소 인증제 날개를 타고 국내 수요처에 쏟아져 들어올 전망이다.
지난 4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에서 생산된 그린수소는 풍부한 재생에너지원과 항만 기반 시설, 생산 증대가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두루 갖춰 각국 기업의 현지 생산을 유인하고 있다. 워낙 안정적인 사업환경을 제공하다 보니 사업권 확보를 놓고 굴지의 에너지기업 간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중동 현지에 그린수소 생산 거점을 확보한 한국 기업도 하나둘 나타났다. 지난달 14일 한국서부발전이 ‘아랍에미리트(UAE) 아즈반 1500MW 태양광발전 사업’ 입찰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부발전은 프랑스전력공사의 신재생 자회사인 EDF-R과 함께 오는 6월부터 2026년 7월까지 약 1조원 이상을 투입해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는다. 앞서 서부발전은 6000억원 규모의 오만 마나 500MW 태양광발전 사업권도 확보했다. 중동에서만 총 2GW에 달하는 사업을 수주해 이곳에서 만든 전력으로 그린수소·암모니아를 생산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UAE 아즈반 사업의 연평균 예상 발전량은 4500GWh로, 인천시의 한 해 가정용 전력 소비량과 같다. 풍부한 일조량과 드넓은 부지 덕택인데, UAE 수전력공사가 향후 30년간 생산될 전력 구매를 보장한다. 이에 수소·암모니아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최적지로 꼽힌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그린수소 생산 앞 단계인 재생에너지 발전에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가졌다”고 밝혔다.
포스코홀딩스, 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 등도 오만 그린수소 독점 개발 사업권을 따냈다. 서울시 면적 절반에 달하는 부지에서 향후 47년간 연간 22만t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이들 기업이 확보한 부지는 두쿰 경제특구 내 도로·항만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단지 조성이 수월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홀딩스 측에 따르면 오만에서 생산할 그린수소를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120만t의 암모니아로 합성한 뒤, 국내로 들여와서 제철소에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과 수소·암모니아 혼소발전에 사용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청정수소 인증제 시행을 계기로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아직 실증 단계에 있는 국내 그린수소 프로젝트는 가뜩이나 높은 생산 단가와 좁은 부지 면적에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앞으로 인증제로 인해 사업성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핵심은 새롭게 시행될 인증제에선 해외든 국내든 오직 수소 생산 과정에서의 배출량만 따져 수소 등급을 매긴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29일 청정수소 인증제 운영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청정수소 배출량 산정 기본원칙에 대해 “Well-to-Gate 기준에 따라 수소 생산까지만 산정한다”며 “선박운송 과정의 배출량은 당분간 청정수소 배출량을 산정할 때 제외된다”고 밝혔다. 즉 해외에서 생산된 수소를 국내로 들일 때는 현지 생산 과정에서의 배출량만 고려한다는 얘기다.
수소 업계 관계자는 “선박운송 비용 등을 고려하면 해외 그린수소나 블루수소의 최종가격은 현지 생산비용 대비 2배에 가까운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청정수소 인증만 놓고 볼 땐 당분간 해외와 국내 그린수소에 차이를 두지 않아 대용량의 수소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해외 그린수소 생산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충분히 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2분기쯤 개설될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과 발을 맞춰 청정수소 인증제의 윤곽이 공개됐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청정수소 인증제 종합 설명회’에서 인증제 운영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혜진 박사는 청정수소 배출량 산정 기본원칙에 대해 “Well-to-Gate 기준에 따라 수소 생산까지로 범위를 끊어 산정하겠다”며 “수소 순도는 99% 이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선박운송 과정의 배출량은 당분간 청정수소 배출량을 산정할 때 제외된다. 수소 생산 원료인 천연가스를 해외에서 들여오거나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해외로 이송할 땐 선박을 활용한다. 해외에서 생산된 수소를 국내로 들여올 때도 마찬가지다. 이 박사는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이 아직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제외한다”고 밝혔다.
정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청정수소 기준 충족 여부를 검토하는 시범사업 등이 진행된다”며 “전력거래소와 협의해 CHPS에 참여할 때 인증 등급과 배출량 결괏값 등을 증빙서류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인사말에서 “청정수소 기준이 제시돼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촉진되는 등 국내 생태계 조성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청정수소 인증제 시행을 비롯해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양·다자 수소협력 강화, 글로벌 수준의 수소 규제 및 안전기준 확립 등 수소경제를 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수송을 위한 가압 공정 배출량 ▲설비제조 관련 배출량 등 수소 생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활동은 청정수소 배출량을 산정할 때 모두 제외된다.
이어 이 박사는 수전해 수소(그린수소), 개질·가스화 수소(그레이·블루수소), 바이오 수소 등 수소 생산 방식별로 배출량 산정 시 유의 사항을 공개했다.
수전해 수소는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거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등 직·간접적인 연결 방식이 모두 허용된다. 다만 REC를 통한 전력 조달분은 사업자의 수소 생산용 전력원 중 일부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REC를 허용하면 현물 시장에서 전력을 조달하게 돼 장기적인 관점에서 청정 전력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이 박사는 “REC는 전체 전력 조달분 중 10% 이내로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개질·가스화 수소는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의 채굴 및 조달·운송 등 업스트림 부문의 배출량이 관건이다. 이 박사는 “블루수소는 제시해야 하는 업스트림 배출계수가 많은 편인데, 기기 효율 등 현장 데이터를 충실히 제출해 달라”고 말했다.
청정수소 인증 절차는 우선 생산설비에 대한 확인서를 발급한 뒤, 이로부터 6개월 동안 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장 심사가 진행된다. ‘선(先) 수소 생산-후(後) 인증’ 시 사업자의 리스크가 큰 점을 고려한 조치다. 설비 확인과 인증 신청에서 인증서 발급과 등록까지 전 과정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행하는 ‘청정수소 인증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도 내년부터 착수한다.
이 박사는 또 “청정수소 배출량 자가 산정툴을 개발해 기업의 배출량 산정방법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 개설될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CHPS) 참여를 앞둔 청정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청정수소 기준 충족 여부를 검토하는 시범사업 등이 진행된다”며 “전력거래소와 협의해 CHPS에 참여할 때 인증 등급과 배출량 결괏값 등을 증빙서류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인사말에서 “청정수소 기준이 제시돼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촉진되는 등 국내 생태계 조성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청정수소 인증제 시행을 비롯해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 양·다자 수소협력 강화, 글로벌 수준의 수소 규제 및 안전기준 확립 등 수소경제를 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액화수소플랜트 가동을 준비 중인 A사는 최근 수소 사업 투자에 대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수소 시장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업체들이 액화수소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예상보다 수요처 확보가 쉽지 않아 사업성을 갖추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A사 관계자는 “기존에 발표한 (액화수소) 생산 시점보다 양산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수소 충전소 구축도 수소 생산 시점에 맞춰 이뤄져야 해서 명확한 가동 시점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1호 액화수소 생산시설인 창원 액화수소 플랜트는 하루 5톤(t)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지만, 아직 상업생산을 하지 못 하고 있다. 해당 공장은 지난해 8월 준공 이후 시운전에 돌입했지만, 정작 액화 수소를 공급할 충전소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액화수소 주요 소비처인 수소버스도 생산도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 액화수소플랜트는 두산에너빌리티와 창원산업진흥원,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공동 출자한 특수목적법인 ‘하이창원’이 운영을 맡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 공장은 지난해 7월부터 상업생산에 나서야 했다. 하이창원 관계자는 “공장 시운전을 마치고 언제든 상업생산이 가능한 상태”라면서도 “수요처는 점점 늘고 있지만 충전소 구축이 올해 하반기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액화수소는 수소를 영하 253도의 극저온 상태로 냉각해 액화한 것으로 기체 상태인 수소보다 운송 효율이 높고 빠른 충전이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 덕에 액화수소는 차세대 수소 운송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피가 작아 충전소 부지 면적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SK E&S, 효성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 등 액화수소 생산 계획을 세운 기업들은 당초 지난해 모두 상업생산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현재 본격적으로 액화수소 생산에 나선 기업은 없다. SK E&S는 지난해 11월, 효성중공업은 같은 해 12월 액화수소 생산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줄곧 가동 시기를 연기해왔다.
SK E&S는 이르면 오는 3월, 효성중공업은 상반기 내 공장 가동을 시작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들이 생업생산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인프라와 수요처 부족 두 가지다.
창원 액화수소플랜트의 경우 20여곳의 수요처와 구매 계약을 맺었지만, 하루 5만t의 생산량을 받아주기엔 부족하다고 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수소버스 증가세도 뚜렷하지 않다.
충전소를 설치하는 데 있어 인허가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인프라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 200곳 가운데 액화수소 충전소는 한 곳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액화수소를 공급할 데가 마땅치 않기도 충전소 구축이 되지 않은 점이 더 큰 문제”라면서 “기체수소 충전소 부지에 액화수소 충전소도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공급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올해부터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주요 소비처인 수소버스 운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올해 166억원을 투입, 수소 승용차 102대와 수소 버스 42대를 보급할 예정이다. 향후 3년 동안 공항버스 300여대를 포함해 시내버스·민간기업 통근버스 등 총 1300여대를 수소 버스로 전환할 계획도 세웠다. 인천시는 올해까지 수소버스 70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수소버스 생산-액화수소 공급-수소버스 운영’ 등 벨류체인을 구축해 수소버스 보급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SK E&S는 현대자동차, KD운송그룹과 함께 오는 2027년까지 수도권에서 운행 중인 시내·광역·공항버스 등 1000대를 수소버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는 100대가 목표다. 현대차도 올 4월부터 대전 공장서 수소버스를 본격 양산한다.
액화수소 충전소도 본격 개소한다. 환경부는 올해 액화수소 충전소 총 37개소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두산에너빌리티, SK E&S, 효성중공업 3사도 올 하반기부터 충전소 구축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액화수소 유통 활성화를 돕기 위한 규제 완화도 이뤄진다. 현재는 사업자가 한 장소에서 LPG 충전소와 액화수소 충전소를 함께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올해 하반기 ‘액화수소 전주기 안전 기준’이 법제화되면 LPG 충전소 인프라를 활용해 액화수소 충전소를 함께 운영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