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불필요…대체연료로 무공해화가 현실적”
월간수소경제 = 박상우 기자 | 최근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에 빠졌다. 캐즘은 신기술 개발 이후 대중화되기까지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포함) 판매량은 313만9,000대로, 지난해 1분기보다 20.4% 증가했다. 그러나 직전 분기인 2023년 4분기와 비교하면 68.6%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얼리어답터의 초기 구매 수요가 완결된 데다 경기침체, 높은 차량 가격, 충전 인프라 부족, 충전요금 인상 등으로 인해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투자 전략을 수정하며 전동화 전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는 순수전기차 브랜드인 폴스타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대주주인 중국 지리자동차에 보유 지분을 상당수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전기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신형 전기픽업트럭과 3열 전기SUV의 출시 일정을 연기했다. 또 존 롤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신규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시설 투자를 일부 연기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GM은 주력 픽업트럭의 순수전기모델 출시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대신 증가하는 하이브리드차 수요에 대응하고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 바라 GM CEO는 지난 2월에 열린 2023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전기차 도입이 둔화하고 있다”며 “북미 지역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가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은 동유럽에 세우기로 한 배터리 생산공장 설립을 무기한 연기하고 2026년까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세우기로 한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차로는 강화되는 자동차 탄소배출 규제에 대응하기 어렵다. 미 에너지부가 지난 2022년에 발표한 ‘차종별 탄소배출량 조사’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차의 탄소배출량은 3.1톤으로 전기차(1.2톤)의 2.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전동화 전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데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30년 전보다 겨우 3.78배 증가하는 등 전기차 시장이 언제 활성화될 지 알 수 없다.
이에 완성차업계는 기존 내연기관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화석연료를 ‘대체연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적절한 대안
대체연료는 기존의 화석연료(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나 핵연료(우라늄 등)가 아닌 물질 중에 연료로 사용 가능한 것을 말한다. 바이오연료(수첨바이오디젤 등), 암모니아, 수소(수소엔진용, 연료전지용), 재생합성연료(이퓨얼, e-fuel)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연료는 수소, 암모니아처럼 탄소를 전혀 포함하지 않거나 재생합성연료처럼 이산화탄소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화석연료보다 친환경적이다. 특히 바이오연료는 원료인 바이오매스가 성장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을 상쇄하고 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원순환을 촉진한다.
또 대체연료는 효율성과 유연성이 화석연료 못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뿐만 아니라 항공, 해운, 농기구, 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현재 사용 중인 내연기관과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신기술 개발과 인프라 조성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이퓨얼(e-Fuel)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 등 탄소 자원으로 제조한 합성연료로 제조 방법과 반응 조건에 따라 메탄·메탄올·가솔린 등 다양한 형태로 제조할 수 있다.
또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제조 시 이산화탄소를 활용하고 완전 연소 비율이 높아 기존 경유차 대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20~40% 수준이다. 특히 생산 과정 특성상 황 성분을 전혀 포함하지 않아 대기 산성화도를 40%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
부피당 에너지밀도가 높아 수송용 연료로서 주행거리나 주유시간에서 수소나 배터리보다 우수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내연기관차와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석유 제품과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어 전동화가 어려운 항공·선박 등 수송부문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수소의 경우 기존 화석연료보다 에너지효율과 에너지밀도가 높기 때문에 기존 내연기관의 연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완성차업계에서는 수소를 태우는 내연기관, 즉 수소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소엔진은 현재 보유 중인 엔진 기술과 설비를 활용할 수 있어 비용 절감과 동시에 상용화 시기를 앞당길 수 있고 99.99% 이상의 고순도 수소를 이용해야 하는 연료전지와 달리 저순도 수소로도 구동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특히 연료전지나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건설기계, 중대형 상용차, 선박, 항공기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연료전지와 배터리는 제약이 많다.
먼저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모빌리티 엔지니어링 기업인 AVL이 2021년에 내놓은 보고서 ‘9th AVL Large Engine Techdays’에 따르면 1만4,770TEU급 컨테이너선이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필요한 약 7,000톤의 HFO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약 16만 톤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부피로 환산하면 컨테이너 화물과 맞먹는 수준의 배터리 저장공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또 연료전지는 충전시간과 사용시간이 배터리보다 우수하나 비용이 많이 들고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며, 열약한 사용환경에서 내구성 확보 등 기술적 성숙도가 낮아 활성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소와 전기를 생산할 때 주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데다 리튬, 니켈, 백금 등 핵심 소재를 채굴할 때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산물이 발생하고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로 보기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나 업계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내연기관 판매 금지는 근시안적
전문가들은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보단 대체연료를 기반으로 내연기관의 무공해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재우 한국자동차연구원 대체연료동력기술부문 부문장은 지난 5월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9회 자산어보’에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는 불필요하다. 전기차 전환을 하면서 동시에 내연기관을 무공해화 한다면 전기차 사업은 훨씬 더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의 어떤 산업이 친환경 산업으로 전환될 때 새로운 친환경 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업계 입장에서는 굉장히 환경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르쉐는 오는 2026년부터 이퓨얼을, HD현대인프라코어는 수소엔진트럭을 양산할 계획이다. 또 한국과 유럽은 탄소중립연료 확대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는 내연기관이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연기관의 무공해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미 탄소중립연료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경덕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내연기관은 2040년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선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와 같은 근시안적인 정책보단 ‘자동차 온실가스 전과정평가(LCA)’ 기반으로 동력원에 대해 인센티브 또는 패널티를 주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대체연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월 재생합성연료(e-fuel) 등 친환경 석유대체연료의 생산과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발의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친환경 연료를 명시적으로 구분하도록 석유대체연료 정의 변경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폐윤활유, 바이오매스 등을 친환경 정제원료로 규정 △친환경 연료의 개발·이용·보급 확대, 원료 확보 지원 등 국내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정 △친환경 연료 관련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관(석유대체연료센터) 설치·운영 근거 명시 등이다.
이와 함께 대기환경보전법에 ‘자동차 온실가스 전과정평가(LCA)’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발의된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LCA는 자동차 제작의 원료 채취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해 평가하는 것으로,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수송부문 온실가스를 근본적으로 감축하는 탄소중립의 주요 정책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 안으로 자동차 온실가스 전과정 평가방법을 개발하고 EU의 국제기준 도입에 발맞춰 2026년 6월부터 전과정 배출량을 차량 제조사들이 자발적으로 보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경유차에 바이오디젤을 혼합하는 RFS(신재생에너지 연료 혼합의무화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 초기 0.5%였던 혼합비율은 현재 3.5%로 상향됐으며 2030년에는 8%까지 상향될 예정이다.
업계는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관련 산업이 조기에 조성될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한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 석유정책연구실 실장은 “정유업계가 2030년까지 바이오연료 사업에 6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원료로 사용되는 폐식용류와 폐플라스틱의 국산화율이 2022년도 기준으로 30%가 안된다”며 “이 때문에 폐식용류 가격이 새식용류 가격보다 비싸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체연료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내에 관련 산업 인프라를 빨리 만드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이를 위해선 세액공제를 통해 민간에서 망설이는 부분들을 해소해주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만큼 써라’는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 불확실성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유철호 현대자동차 전동화구동시험2팀 책임연구원은 “이퓨얼은 기존 인프라 활용, 높은 에너지밀도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충분히 공급한다면 모든 차량에 적극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탄소중립연료 시장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규격, 탄소배출량 등 관련 법규를 제정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전까지 전기차처럼 보급을 지원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윤섭 HD현대인프라코어 책임연구원은 “수소 시대가 열린 만큼 그에 맞는 수소엔진 관련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며 "수소엔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ZE-HDV 기준을 도입하거나 정부의 보조금을 법제화해야 한다. 또 발전시장에서 수소연료 의무 사용 비율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차량에도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과도기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빠지면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일본 도요타그룹의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다.
아키오 회장은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업계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라며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도요타자동차는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대신 하이브리드, 수소차 등 다양한 친환경차 개발에 집중했다.
이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일본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의 경제 전문가는 “도요타가 미래지향적으로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은 정말로 끝장이 나고 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빠지자 시장에서 “도요타가 맞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키오 회장도 자신의 입장이 옳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재팬모빌리티쇼’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단 하나의 해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됐다”며 “내가 현실이라고 보는 것을 계속 말해왔다. 규제가 이상적인 기준에서 만들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이용자”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전기차 전환이 미뤄졌을 뿐 방향은 변함없다고 분석하는 만큼 도요타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내연기관차가 모두 공존하는 지금의 과도기가 업체들에겐 황금같은 기회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 월간수소경제(https://www.h2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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